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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글을 읽으며.

잡동사니/Books

by 금강력사 2010. 7. 1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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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에서 법정스님의 글을 읽으며

홀로 사는 즐거움
법정 저
예스24 | 애드온2

 

오늘 문득 한국에서 가지고 온 법정스님의 책, 홀로 사는 즐거움을 펴보게 되었다. 에세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그냥 고인이 살아갔던 이야기를 그리고 고인 스스로를 조용히 사람들에게 전한다. 너무나도 맑고 아름다운 문장들이다.

하지만 어찌나 나에게 이렇게 도전적이고 어려운 문장들로 가득 차 있을까? 도망치고 싶다.

 

법정스님의 글은 나에게 전혀 평화롭지 못하다. 도전 그 자체다. 내가 무엇인가를 계속 써 내려 갈 수 있는 가에 대한 너무나도 큰 도전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피아노를 치면서 나는 일찌감치 안되겠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늘 그만 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나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였다.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는 방법이 그림이었다. 손위에서 펼쳐지는 나만의 세상을 나는 즐겼다. 요즘은 문장을 만들어 가는데 재미를 느끼고 있다. 스토리를 써 내려가고, 내가 말하는 스토리를 통해서 나 스스로를 정리한다. 거기에 누군가가 내가 쓰는 스토리에 반응을 한다는 것은 내가 몰랐던 또 다른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법정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아니. 글이 아니라 문장 몇 줄만 읽었을 뿐인데,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조용하지만 무겁게 공간을 채우는 난 꽃 같은 향이 있는 문체라고 해야 할까? 그에 비해 나의 문장은 어찌나 팍팍하고, 맛이 없던지. 종이 위에 썼더라면 구겨서 쓰레기 통에 넣어 버렸을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내 문장도 얼마나 부끄러운지. 쥐구멍에 숨고 싶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던가? (그렇지만 나는 포스팅 한다.)

고인의 삶의 향과 인격 그리고 혹은 종교인으로서 고귀한 정신 세계 하나하나가 책의 문장 한줄한줄 배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면, 나의 짧은 지식과 각박한 정신 세계, 완성이고 뭐고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는 나의 인격이 한줄한줄 글을 통해서 밝혀 질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작가가 되는 것을 포기 했노라고 선언했던 한 친구는 자신이 글을 쓰고, 책을 엮는 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못하겠다고 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라고. 나는 그에게 많은 예술가들은 각성을 통해서 완성되었다고 말 했지만, 이제서야 조금 이해가 된다. 그는 분명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몇 일이고, 몇 달이고 그리고 몇 년간 느껴 왔었을 것이다. 글이라는 것은 정말 자기 자신이 밝혀 지는 영역이다. 문학이라는 세계를 나는 이제서야 조금 이해하게 된 것일까?

 

고인의 고요한 삶이 묻어 나는 글은 나의 인생 자체에 대한 가장 큰 도전이다.

지금 내가 살고 싶은 인생. 지금 내가 달려가고 있는 나의 삶의 방향. 그리고 내가 그것을 내 손에 넣었을 때 행복 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거기에서 정말 솔직하게 느껴지는 만족감, 행복감. 이런 것들을 초라하게 보이게 하는 그의 이야기들.

고인의 이야기들은 내가 지금 a4한 장을 넘기면서 뭔가 써내려 가는 이 많은 것들이, 그의 문장 하나에도 못 미치는 안타까운 사실만큼이나, 많은 것들로 채워 넣고 싶어하는 나의 삶들이 아무 것도 채우지 않은 그의 작은 인생 한 자락에도 미치지 못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만든다.

 

성경에서 예수의 삶의 무게가 인류의 무게 보다 무겁게 판단되었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말이 된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가볍고 가벼운 것들을 우리 삶에 채워 넣어야 하는가? 부자청년이 예수를 따라 가는 것이 정말 그렇게 힘이 들었을까? 예수를 따라가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소유라고 생각되는 가벼운 많은 것들을 놓아 두는 것이 힘든 것이다. 나는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또 다른 한 명의 부자 청년이다.

 

오늘 법정스님의 문장은 나를 잠들지 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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