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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유배길에서 추사를 만나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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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강력사 2023. 12. 1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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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은 소속이나 단체를 옮길 때 이런 저런 의미들을 부여하곤 한다.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소속의 이동은 일종의 객기처럼 취급되곤 하는 사회적인 풍토도 존재한다. 심지어 소크라테스도 아테네를 떠나자는 크리톤의 권고를 온갖 의미들로 떨쳐내지 않았던가? 그노메 명분은 부산 싸나이들이 싸울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나에게 '제주도 입도'에는 큰 의미가 필요하지 않았다. 이성의 자식답게 합리적인 이유 몇 개면 충분했다. 각박한 생활에서 여유 있는 풍토가 있는 곳으로. 길게 남은 여생을 위해 교육대학원이 있는 곳으로. 제주가 바로 최적지였다. 더군다나 제주는 요즘 대한민국 대표 '핫 플레이스'가 아니었던가?

 제주도 입도에 합리적 이유도 의미도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육지에서의 추방 당한 수많은 유배인 들이다. 그리고 그들 중 한 사람 추사 김정희도 같은 처지였다. 더군다나 추사는 이미 당대 최고의 석학으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다. 그에게 그 어떤 파격적 선택이 필요했을까? 당파싸움에 희생자로서 추사가 제주도로 귀양을 오는 데에 기본적인 그의 감정은 절망에 가까웠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제주도에서 무엇 무엇을 하리라.' 하는 다짐을 하기에 그는 이미 너무 큰 사람이었다. 제주도로 향하는 뱃머리에 앉아 밤바다처럼 찾아오는 절망감을 당대의 유학자로서 담담하게 현실로 받아들이는 추사를 상상해 본다.

 

 -서울을 떠난다는 것-

 대한민국의 수많은 사람들은 꿈과 희망을 품고 서울로 입성한다. 서울이라는 도시. 강바닥 어두운 그늘 아래서 눈을 번뜩이며 꿈틀거리고 있는 그러나 어떤 용보다 크고 화려한 이무기 같은 도시 서울이다. 각자의 세계에서 꿈을 품고 모여드는 곳이다. 하지만 그 중 다시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처음 도시에 들어올 때 맘속에 품어 왔던 꿈들이 그 도시와 함께 하늘로 사라져 버리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꿈이 꿈으로 밝혀지는 순간의 아련한 아쉬움이 서울에 남아 있다. 언젠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었노라고 슬피 울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현실에서 나는 하늘로 사라진 희망을 빠른 시간 내에 망상으로 치부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망상 속에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현 시점에서 그것이 망상이었다는 심증이 점점 굳혀져 가는데, 그 실마리는 다름아닌 내가 그 세계에서 몇 발작 발걸음을 걸어 나가본 경험에 있다. 신기하게도 걸으면 걸을수록 눈앞에 무엇이든 형체가 나타나야 하는데 그와는 반대로 더 길을 잃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탐사를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한번 주어진 내 삶을 가지고 굳이 몇 십 년간 불안한고 불행한 탐사를 강행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내 입장에서 아쉬움은 없다. 단순한 사칭연산만 해 보아도 서울을 떠남으로써 받은 상실감 보다는 제주를 오게 됨으로써 얻는 즐거움이 더 크다. 최근 들어 더욱 분명해지는 것은 나라는 사람은 도시가 주는 즐거움을 크게 즐기지 못하는 타입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혹은 이런 생각도 해본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다 도시의 즐거움보다는 자연이 주는 원초적인 즐거움을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즐거움을 얻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일 뿐.

추사는 이미 하늘을 날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도시가 주는 어떤 즐거움도 이미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현대의 도시와는 다른 모습이었겠지만 수도 서울, 메이저에서의 활동이 주는 즐거움과 만족감이 어찌 달콤하지 않았겠는가? 더군다나 그는 지금으로 따지면 세계의 수도인 북경 유학파가 아닌가? 그 후 이어지는 학문적 업적과 대과 합격, 그리고 이어지는 관직들까지 추사는 이미 당대의 ‘용’이었다.

그런 그가 유배를 당한다. 나는 이루지 못할 꿈을 꾸었다고 울었을지 모르겠지만, 추사 김정희는 이미 도달한 꿈에서 추락이자 비참한 현실 세계로의 감금이다. 그 상실감은 상상하기 어렵다.

비슷한 ‘서울에서 제주행’이지만 어찌도 나와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사실 처음부터 추사 김정희라는 캐릭터가 나를 투영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큰 인물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대목에서 그와 나의 차이는 분명해 진다. 대자연 앞에서 그 어떤 인간이든 한없이 작아 보인다는 원리를 이용해 거시적 관점에서 당신을 나와 비슷한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리고 싶은 사심이 가득해진다. (앞으로 이렇게 다른 추사와 나의 공통점을 제주 생활에서 발견하도록 해 봐야겠다.)

 

-정부, 왕조와의 관계-

 입도 후 나를 괴롭히기로 예정된 항목 중 하나는 역시나 정부와 나와의 관계였다. (이런 표현이 나를 요주의 노동운동가처럼 보이게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은 모범시민에 가깝다.) 제주도로 떠나면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중심부에서 멀어지니 그런 것들도 멀어 질 줄 알았지? 약 오르는 사실은 이 땅도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이런 저런 상황 눈감을 수 있고 다 뱉어 버릴 수 있다지만, 다양한 행정기관들에서 날아오는 각종 고지서들은 무시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적인 압박이다. 특히나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받아 들 때는 처음으로 4대 보험이 지원되는 회사를 관둔 것을 후회하였다. 과연 소시민다운 발상이다. 정부와 나의 관계는 투표용지와 각종 세금 외에 딱히 드러나는 것도 없다. 하지만 난 가끔 그 관계마저 괴롭다.

 추사는 조선왕조로부터 자유로웠을까? 다양한 입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질문의 폭을 좀 넓혀 보자. 귀양인은 나라로부터 자유로운가? 임으로부터 자유로운가?

그 당시 귀양은 당파 싸움에 의한 것들이 많았고, 당파 싸움은 기본적으로 유학자들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조선의 선비다. 선비란 어떤 사람들인가? ‘선비 사()’라는 한자가 보여주듯이 선비라는 의미에는 벼슬이라는 의미가 이미 함축이 되어 있다. 즉, 그들은 평생 나라, 혹은 나라님을 모시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중앙 국정에 참여하는 것은 그들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었고, 평생의 소망이었으리라. 그런 그들에게 귀양살이란 일종의 삶의 목적을 뺏어가는 처신이 아니었을까?

 얼마 전에 봤던 '맨 오브 스틸'의 악당 ‘조드’ 장군의 대사가 생각난다. 

"난 크립톤(슈퍼맨의 고향 행성)의 안녕을 위해 태어났고, 평생 그것만을 위해 살아 왔는데, ... 네놈이 그것을 뺏어 갔다!! 슈퍼맨!!! 이~ 죽일 놈아!!!" 

 유배 당한 당대 최고의 사대부의 마음도 이와 비슷했을까? 사대부들에게 정치를 뺀다면 학자로서 역할만 남게 된다. 추사가 귀양살이 동안 선생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추사체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정치라는 큰 삶의 목적을 상실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영원한 조선의 선비다. 개인적으로 귀양살이의 고통을 예술혼으로 불태워서 재 한줌만 남기는 스토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추사의 ‘세한도’를 일반적으로 ‘선비의 지조’에 비유하곤 한다. ‘세한도’의 제찬에서도 ‘군자와 그 절개’에 대한 언급이 필수적이다. 군자와 절개라니! 그렇다. 그의 그림 어디에서 산수에서의 유유자적은 찾아 볼 수 없다. 

 같은 붓을 들고 같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남길지언정, 심지어 초야의 대 자연으로 유배를 보낼지언정, 조선 사대부에게 도가의 유유자적은 상상할 수도 없는 세계였던 것일까?

‘임은 비록 나를 버릴지라도 나는 절개로서 그 고통을 승화하리니.’

내 입장에서는 지고 지순한 절개도 일종의 병이다.

 

-교육자로서의 제주에서의 삶-

일차적으로 나는 제주도에 교육학 공부를 하기 위해 왔다. 사회교육과 석사과정. 조금 더 원초적으로 표현하자면 선생님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을 수료할 수 있는 최적지로 제주를 선택했다. 이 대목에서 제주 입도에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을 만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고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전까지 나는 전통 있는 대기업의 재무팀에서 일했었다. 과거로 따지면 명망 있고 실질적 세력이 있는 지방 영주 참모진의 구성원 정도일 것이다.

석사과정 첫 수업이었던 '교육학개론'의 교제(?)로 제시된 책이 '제주 유배길에서 추사를 만나다' 였다.  그리고 첫 수업 내용에도 선생으로서 추사의 뛰어남이 언급되었다. 제주에 유배되기 전까지 학자로서 관료로서의 삶을 살아왔던 추사였다. 그랬던 그가 제주에서 선생으로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제주도에 교육학 학위를 받으러 온 나에게 이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조정에서 제주로 유배 와서 선생이 되는 추사라니. 그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싶은 욕망이 솟아 오른다. 제주에서 추사의 삶에 나를 투영하고 싶어진다.

강의에서도 그렇고 책에서도 강조되는 선생으로서의 추사의 덕목은 뛰어난 학문의 전파도 혹은 그 명성이 자자한 추사체의 전수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선생과 제자의 '관계' 였다. 영어로는 ‘Relationship.’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한 이후 미디어로 엄청난 성장을 한 TED에서 교육에 대한 특집 기획 같은 것을 한적이 있다. 몇몇 인상 깊은 짧은 강의가 있었는데 그 중 현재 교직에 있는 흑인 여선생님('흑인', '여'라는 표현이 다소 마음에 걸리지만)의 강의가 심하게 와 닿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강조했던 것이 바로 'Relationship!'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간단히 이렇게 전개된다.

선생으로서 학생과 인간적인 관계(Relationship)를 맺지 않는다면 그것은 선생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학생들은 배우는 수업에 대한 대가로 수업료를 지불하고 우리는 그것을 받기 때문에 가르친다.' 이 대목에서 그녀는 이렇게 반박한다. '만약 단순히 그것 때문에 학생들이 수업료를 지불한다면, 학생들은 자신들이 원치도 않고 재미도 없는 수업에 수업료를 지불할 이유가 있을까?'. 선생은 학생들과 인간과 인간으로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설사 어떤 학생은 사랑할 수 없어도, 인간적으로 그 학생이 싫을 수 있더라도 그들과 선생님과 학생으로서의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거기에서 교육은 시작되고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그녀는 강연을 마친다. 

과연 올바른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바람직한 모델 중 한 명이 바로 추사가 아니었을까? 제주에서 만난 추사의 제자들은 그에게 이렇다 할 수업료를 지불할 능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후대에 학문적 업적을 남겨서 추사에게 영광을 돌릴만한 걸출한 인물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추사는 그런 것들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들을 측은하게 여기고 가르침을 시도한다. 그리고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에피소드들과 제자들의 증언 들에서 그들이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고 그것을 받는 피상적인 관계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추사도 인간으로서 자신의 제자들을 보살폈고, 그의 제자들도 그렇게 스승을 보살폈다. 

 내가 제주도를 선생이 되기 위한 과정을 거칠 곳으로 선택한 데에는 추사 같은 선생들을 롤 모델로 삼으라는 운명적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추사는 나와 같은 이력이 있는 선생이 롤 모델로 삼기에 이상적인 캐릭터이다. 책의 저자인 양교수님은 수업 중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과한 욕심으로 ‘도덕적 자학증’을 앓는 선생의 모습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의하셨으나, 그렇다고 나를 투영하기를 포기하기에는 추사는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난 아직 선생으로서는 피어나는 새싹이니 그에게 이입되어 보겠다며 고집을 피워본다.

-애월읍민과 세계시민-

어디 사람이냐? 라고 묻는 물음은 출신을 묻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가끔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허세 가득한 대답을 하곤 했는데 '지구 출신입니다.'라는 대답이었다. 지금은 ‘애월읍민입니다.’로 그 대답을 대체 하였다. 무엇을 하느냐? 라는 질문에는 고민 끝에 ‘백수입니다.’라는 대답으로 통일하였으나, 그마저도 양 교수님께서 지적하셨던 ‘도덕적 매조키즘’, 혹은 그 정도도 아닌 단순한 허세 같이 느껴져서 ‘교육대학원 다니고 있고…. . 어쩌고 저쩌고.’ 로 다시 대답을 수정하였다.

나를 한 개인으로서 규정하는데 내가 속하고 있던 단체나 소속을 부정하려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교과서에서 사회 문제로 지적되었던 학연, 지연, 학벌 사회를 극복해 보자는 결벽적인 습관이기도 했고, 어떤 소속을 말한다는 것은 왠지 상대방에게 나에 대한 선입관 같은 것을 남겨줄 수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여 그에 대한 방어기제로 밝히기를 꺼려하기도 했다. 졸업한 나름 유명한 기독교 재단의 고등학교는 모교로서 한동안 강한 자부심과 소속감을 주었다. 대학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일부 주변의 모교 출신 사람들이 선택 받은 민족인양 으스대던 모습을 보며 그에 대한 반감이 생기기도 하였다. 어쩌면 소실적 이런 반감이 소속에 대한 부정을 더 부추겼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필요도 없었던 나의 부정들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도덕적 자학증? 나는 결정적으로 나의 본질에 대한 확신의 부재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그냥 여전히 길을 찾아 헤매는 젊은 영혼일 뿐이다. 그런데 거기에 온갖 의미들을 부여하고 싶어하고, 그마저도 특별하고 싶어한다. 이런 증세를 치료할 방법은 두 가지다. 지금 내 모습을 받아 들이거나, 혹은 나의 본질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분명해 지든가.

추사는 조선의 선비이면서 제주 유배인 이었다. 추사는 자신의 소속과 신분을 숨길 수도 없었고, 그럴 의사도 없었다. 조선의 선비가 그의 본질이었으며, 유배인 이라는 그의 상태는 부정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대학원생이라는 상태도 받아들이지 못해서 쇼를 하던 나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유배지에서 추사는 그저 담담하다. 그의 바위 같은 본질이 어딜 가겠는가?

그는 갇혀있으면서도 갇혀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서신으로 ‘백파’를 논박했던 일화는 그의 식견이 성리학의 세계를 넘어 불교에도 정통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비록 세계적 역사의식의 부재를 노출하였지만 ‘사마랑 호’의 출현에 조정과 직접 연락을 주고 받으며 의견을 피력하는 장면에서는 과연 그에게 제주도라는 공간적 유배가 의미가 있는가 싶지도 하다.

추사가 스스로 ‘어디어디 출신이다.’라고 설명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지만, 그야 말로 진정 ‘지구 출신입니다.’라는 대답이 어울린다. 비록 유배의 형벌은 가시울타리 안의 땅을 허락하였지만, 그의 세상을 좁히지 못했다. 그의 잘 키운 제자 이상적은 당시 육지에 있었어도 구하기 어려운 중국의 책들을 구해 주었다. 그렇다고 그가 생활이 외롭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제주 내에서도 실질적인 생활반경이 넓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세한도’를 그릴 수 있었다. ‘세한도’는 다시 한번 이상적의 손을 빌어 조선반도를 넘어 대륙에서 감탄을 받아 냈다. 어찌 그가 갇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상투적인 표현으로 ‘그의 몸은 가둬 둘 수 있지만 정신은 가둘 수 없다.’

 

-제주자연과 인간, 그리고 예술혼-

운 좋게도 난 세계의 이름난 도시들을 갈 기회가 꽤 있었다. 길게는 몇 달 짧게는 하루 정도 머물며 그 도시들을 느낄 수 있었다. 수십 수백 년, 가끔은 천년 이상을 그 자리에 존재해 왔었던 도시들은 그리스의 신들처럼 각자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다. 대표적인 오래된 도시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과 인간의 문명이 결합하는 모습을 보였고, 어떤 신생 도시들은 진정 신의 영역을 흉내 내며 인간 문명을 당당히 보여 주기도 했다. 모습과 역사야 어쨌든 그들은 개성 있게 자신들의 위대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자신에게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을 압도시키곤 했다. 도시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압도되고 소외되는 사람들마저도 신들이 주는 그 황홀경에 취해 스스로 굴복되기를 자처한다.

제주라는 곳의 도시적 압도감은 내 입장에서 솔직하게 밝히건대 느껴지지 않았다. 제주시에서도 서귀포에서도 새로운 신이 창조되는 모습, 인간의 역사가 신화를 만나 위대함을 이루는 과정을 아직 느끼지 못하겠다. ‘선문대 할망 신화’도 얼마나 소박하고 인간적인가? 다만 제주도에서 인간의 것 중에 감동을 주는 것이라면, 수선화처럼 아름답게 옹기종기 무리 지어 펼쳐진 민초들의 군락과 그들이 쌓은 돌담 정도이다.

 설령 제주의 인구가 백만 이백만이 된다 하더라도(바라진 않지만), 제주 도시의 존재감이 얼마나 자랄 수 있을까? 제주시가 제주섬의 상징이 될 수 있을까? 이를테면 우리가 뉴욕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 마천루와 맨하탄이라는 인간적 상징을 떠올리지 대서양 입구의 허드슨 강의 마지막 섬을 떠올리지는 않는 것처럼, ‘제주’라는 단어에서 제주시를 떠올릴 가능성이 있을까? 

 인간 문명의 상징인 도시가 앞으로도 한동안은 제주의 상징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제주라는 섬이 가지고 있는 자연의 가치가 그만큼 놀랍기 때문이다. 사실 성산 일출봉만 해도 한 지역의 상징이 되기에 충분한 사이즈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수많은 오름은 오르는 사람과 바라보는 사람을 매료시킨다. 사방으로 펼쳐진 바다와 오름과 그 위의 하늘의 조합은 아름답다는 표현으로 부족하다.  그 외에도 제주 자연의 가치를 여기서 일일이 다 열거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한라산의 존재가 있다.

한라산은 곧 제주도다. 이 존재 자체가 압도적인 곳이 제주이다. 나는 남한의 두 번째로 큰 산인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하지만 지리산의 기운을 느낀다거나 지리산의 압도감과 소속감을 확인할 기회는 많지 않다. 어쩌면 지구의 중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 하지만 한라산은 달랐다. 제주 어디서나 그 위용을 느낄 수 있다. 오름 들을 그저 조그만 요철 정도로 보이게 한다. 결정적으로 어디서나 보이는 검은 존재는 저절로 인간을 숙연해지게 만든다. 한라산이 있기 때문에 나 같은 육지동물들이 바다 위에 서있을 수 있다는 느낌이다.

한라산이 주는 압도감을 제주에서 태어난 주민들은 얼마나 느끼고 있을까? 그들도 지리산에서 자란 나처럼 한라산의 존재를 크게 의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제주 도민들도 그 기운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아이들이 한밤중에 깨서 울거나 경기를 하면 한라산 기운 때문에 그렇다며 침을 세 번 맞는다고 한다. 제주도의 가까운 동네 한의원에서는 지금도 아이들이 침을 세 번 맞으러 온다.

한라산과 제주 자연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거기에 숙연함을 느끼는 나를 포함한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이런 함정적 요소를 배치 하였으니, 이제 이 위대함 앞에 숙연해 지는 추사를 그리면 나의 사심은 조금이나마 만족이 될 터. 그러나 책에서는 그런 장면을 찾을 수 없다. 추사가 제주 자연에 대해 감탄한 이야기는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주변의 푸릇푸릇한 나무들이나 제주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 노랗고 하얀 키 작은 수선화 정도에 그친다.

자연 앞에 작아지는 추사는 아니었지만 그는 제주의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소화 시키고 승화하였다. 그 승화의 증거가 바로 추사체의 완성이다. 책에서는 '섬이 만든 예술혼'이라는 하나의 목차로 그의 예술을 제주 자연의 영향권에 아래에 배치하였다. 추사가 50여년간 쌓아왔던 인간으로서의 위대함이 제주의 자연과 만나서 궁극의 예술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책에서도 비슷한 언급이 있지만, 추사의 글씨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제주의 검은 현무암이 보이고 멈추지 않는 바람줄기가 불어가고 묵직하기도 하고 날카롭기도 한 파도가 몰아친다. 그리고 내 눈에는 제주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들꽃 줄기도 보인다.

 

-에필로그-

앞서서 선생으로서 나의 ‘롤 모델’을 추사 김정희로 삼는 것이 멋지지 않겠냐 라는 개인적 바램을 비췄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이상적인 롤 모델이다. 그는 이미 역사 속의 인물이기에 내가 원하는 이미지로 얼마든지 해석하고 그려낼 수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 추사를 예술가로서 ‘롤 모델’로 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예술가의 생명은 독창성과 창조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추사의 작품들은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피력하고 있지 않은가?

소설가 김영하는 ‘우리는 모두 예술가로 태어났습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의 깊은 곳에 숨겨서 살짝 접어놓은 예술혼을 제주에서 다시 펼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사실 언제나 그것을 다시 펼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선생이 되겠다는 것도 심지어 입도 전 기업에서 월급을 받았던 것도 ‘언젠가 이 예술혼을 끄집어 내겠다.’라는 욕구가 내제 되어 있었다고 생각된다. 

추사를 나 같은 범인의 영역으로 끌어내리고자 시도해 보는 것은 처음부터 나의 어리광이었다. 나는 그저 예술을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추사의 예술혼을 조금이나마 닮을 수 있으면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