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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일주일을 - 알랭 드 보통.

잡동사니/Books

by 금강력사 2011. 3. 23.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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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일주일을
알랭 드 보통 저/정영목 역
예스24 | 애드온2

 보통 사람이 아닌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의 일주일을'에 대한 리뷰를 써 본다. 원제는 ‘히드로 다이어리’. 우리로 치면 ‘인천공항 다이어리’ 즘이 되겠다.
 
마치 공항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리뷰를 작성하듯 글을 써놓은 그의 책을 읽으며 또 거기에 리뷰를 써 본다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다. 마치 특정 주제의 뉴스가 뜨면, 포탈의 토론 게시판에 그 뉴스를 주제로 한 장문의 글이 올라온다. 그러면 그 글의 댓글 게시판에는 작가보다 뛰어난 사람이 센스있는 댓을 달아 준다. 사람들은 그 댓글에 이끌려 게판의 글에 들어오게 되고 댓글에 대한 댓글은 수백개까지 달리기도 한다.
 비행기라는 첨단 운송수단에 그 편의성을 최고로 높여주기 위해서, 고심하고 고심하여 설계된 대형 공항이 건설이 된다. 거기에 재능 있는 작가가 설계자가 아닌 보통사람이 보는 주석을 다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토론게시판에 토픽을 던질만한 용기와 능력이 부족한, 혹은 임펙트 있는 댓글을 작성해 그 토픽을 주목받게 만들 달리보기 시각을 가지지 못한 나 같은 범인 들은 그 작업을 보면서 다시 즐거워하며 댓글의 댓글을 작성한다.

 크게 비판적이지도 크게 새로운 주제인 것 같지 않은 보통씨의 글은 그래서 더욱 빛이 난다. 가벼운 시각으로 스쳐지나가는 우리의 일상들을 하나하나 솜솜히 주석을 달아주는 듯한 그의 글은, 그 어떤 학술논문이나 사회 체제를 논하는 글들이 늘 간과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보통의 글은 우리의 일상과 그것들을 보면서 우리가 느껴야 했던 어떤 것들 그리고 우리가 말하지 못해도 느껴왔었던 어떤 것들이 얼마나 가치 있었는지 간접 증명해 준다.
 
지하철 논현역에서 9호선을 타고 영종도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5시간 정도 걸리는 짧은 여행이었는데 여행의 대부분은 인천공항에서 시간을 보냈었다. 스쳐지나가는 공항이 아니라 목적지로서 공항을 가니 그 자체만으로 참 멋진 곳이라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있다. 보통씨 처럼 ‘게이트 너머’까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권한을 얻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더욱 반갑다.

 '알랭 드 보통'의 특유의 문체는 읽는 사람을 소박하게 즐겁게 만드는 것 같다. ‘움베르토 에코’처럼 삐딱함을 즐기는 사람은 신나게 기내식의 비합리성을 지적하며 거기에 연관되어 있는 보통 사람들을 다소 머슥하게 만든다. 하지만 보통씨는 공항 호텔의 룸서비스 메뉴의 이름이 얼마나 시적인지를 말한다.

 햇볓에 말린 크렌베리를 곁들인 연한 채소,
 삶은 배, 고르곤촐라 치즈
 진판델 비네그레트 소스로 무친 설탕 절임 호두

 호텔의 룸서비스 메뉴판까지 살피는 그의 시각과, 그 문장을 일본 에도 시대 하이쿠 형식과 비교를 하는 끝을 알 수없는 지식과 소양, 그리고 그것을 쿠키선물세트처럼 맛있는 상상이 가득한 그리고 한입한입 맛있는 쿠키처럼 글을 써내려가는 그의 솜씨까지 더해서 ‘공항에서 일주일을’은 쓰여져 있다.

 여행을 적정 수준 이상으로 좋아하는 나는, 그의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목민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에 포함되는 것 같은 나는 일반인 치고 꽤 많은 공항을 가본 것 같다. (많은 내 나이 또래의 청년들이 더 많은 공항을 가보고 싶은 생각에 국내 대형 항공사에 취직을 하고 싶어 하기도 하는데, 나 역시 그런 의미에서 항공사에 취직하는 것을 고려해 봤었다.) 많은 공항들은 여행의 일부로 기억되기도 했었고, 그냥 터미널로 인식되기도 했었다. 아무튼 그 공항들은 보통씨가 책을 구성했던 순서처럼 접근, 출발, 게이트 너머, 도착이라는 형태로 우리의 여행에 큰 부분들을 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가 ‘히드로’에서 머물면서 봤었던 큰 틀일 것이다.
 
이 구성은 정말 지극히 공항적인 것이다. 특히나 ‘게이트 너머’에 우리가 공항으로 향할 때 어쩌면 아니 당연히 더 중요하게 생각했었던 수많은 것들이 전부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가 공항을 사랑하게 만드는 환상적인 쇼핑 공간 면세점,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비행기를 탑승하는 비즈니스 맨. 게이트 너머에 일들에 누구보다 들떠 있는 수많은 여행자들.
 
 책을 찬찬히 읽으며 느끼게 되는 것은 나와 우리에게 하나의 스쳐 지나가는 관문일 수 있는 공항은 이렇도록 재미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공감이 되는 부분은 입국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다. 앞서 말했듯이 난 운좋게 꽤 많이 꽤 장기간으로 해외를 오갔었다. 그런데 우리 가족들은 은근히 쿨해서 마중을 나오는 것에 꽤 적극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마중을 나오더라도 익숙하지 못해서인지 쿨해서인지 남들 처럼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다른 게이트에서 상대방을 기다리고 있는 다든지. 아니면 다른 게이트로 나온다든지. 아니면 극적으로 스쳐 지나가서 결국 뒤돌아서 서로를 찾아야 하는 상황을 연출한다든지. 아무튼 이런식으로 뭔가 극적인 상봉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기질상 스스로 더 쿨해지기 위해 마치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내리듯 무심한 표정으로 환영인파를 스쳐 지나가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돌아올 땐 더욱더. 난 그게 내가 수양이 부족하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나 보다. 도대체 얼마만큼 쿨해지면 아무일 없다는 듯 인파를 스쳐 지나 갈 수 있겠는가? 아마 파충류정도 수준은 되야 할 것이다.
 
책에서는 아무도 없는 입국장에서 나의 감정의 변화가 나의 탓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사람이라면 원래 그런거구나. 그래. 사람이라면 원래 그런 것을 가지고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소모적인 나와의 투쟁을 해 왔던가? 공항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일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우리가 여행을 통해서 얻었던 것들, 가슴 뛰게 만들었던 경험들, 여행의 시작의 기분, 입국장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를 기다리는 기분들. 그렇게 중요한 것들에 대한 잊음에 대해서 언급이 되어 있다. 그 잊음은 여행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을 자꾸 다른 곳에서 다시 찾으려고 한다. 나는 얼마나 행복 했던가..... 그 행복을 잊을 때 즘 다시 행복을 찾아가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지금 내일 누군가와 약속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지금 행복을 느끼고 있다. 이것이 여행의 본질.)

 공항 너머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공항을 찾아간다. 지금 나는 또 다른 행복한 여행을 가기위해 공항으로 가고 있다. 어쩌면 이미 공항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공항을 향하기 전부터 난 행복했었다. 난 이미 행복해하고 있다. 내일 그곳에 간다는 생각만으로 행복하다.
 
보통씨의 글이 워낙 재미있다 보니 잠깐잠깐 간과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이 책의 모든 페이지에 걸쳐 실려 있는 사진들이다. 프로 사진작가가 찍은 만큼 사진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양질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가끔 사진을 보지 않고 (사실 보았겠지만 유심히 보지 않고) 넘긴 페이지를 넘긴다. 그러다가 다시 페이지를 들춰서 천천히 사진을 감상하고 그와 함께 실려 있는 글을 읽어본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이책을 공항을 찍은 하나의 사진첩과 그에 대한 이야기들로 봐도 되겠다.

시카고 공항에서..


뭔가 작은 인생인 여행의 시작과 마무리는 공항, 마치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라는 식의 거창한 문구들로 공항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불쑥불쑥 올라오지만 보통씨의 철학과 의도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의 욕구는 오늘 다시한번 자제를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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